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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

2008/08/11 02:12
서양에서 성배는 불멸한 최고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이후 줄 곧 성배는 서양사람들의 보물로써 남아 있죠.

최후의 만찬으로 부터 200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여전히 각종 영화와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며 과학의 시대인 지금도 성배는 사람들의 관심거리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바우돌리노'도 성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긴 여행과 환타지를 그린 소설입니다.

바우돌리노는 에코가 자신의 지식을 마음껏 풀어놓기로 마음 먹기라도 한 듯 광대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대학이 막 생겨나던 프랑스의 파리에서 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던 독일과 이탈리아, 십자군원정길에 있는 불가리아와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 그리고 끝도 없이 펼쳐진 상상 속의 나라들...주인공인 바우돌리노는 이 모든 곳을 무대로 삼아 모험을 합니다.

이 책에는 정치적인 갈등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갈등, 황제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갈등, 동로마제국 내의 암투...

이런 갈등에서는 정치적인 명분과 정당성이 중요한데 황제의 양아들인 바우돌리노는 황제의 명분을 위해서 성배를 찾고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요한사제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에 걸친 여행에서도 결국 요한사제는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바우돌리노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구해준 동로마제국의 역사가인 니케타스에게 자신의 일생을 얘기하는데요...

이 소설은 바우돌리노가 니케타스에게 얘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바우돌리노의 이야기에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믿을 만한 부분도 있는 반면에 허황된 환타지로 밖에 믿을 수 없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나중엔 바우돌리노가 황제의 양아들이었는지도 의심이 되고 그의 모든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닌지 의심을 갖게 됩니다.

아니 의심 보다는 거짓말일 거라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바우돌리노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에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구요...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엔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 책을 읽었던 시간 만큼 에코에게 낚인 것 같은 기분이지요.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거대한 스케일로 성배의 권위를 대변함과 동시에 이 모든 이야기가 한갖 이야기꾼의 농간이었다는 식의 결말은 우리가 평생동안 막연한 환상을 갖고 살아가는 권력과 명예, 진리 등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려는 의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삶을 통해서 권력과 명예, 진리 등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미 알고 있다구요?

그럼 이미 바우돌리노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눈치채고도 계속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지경이어서 계속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던 니케타스는 무엇일까요?

니케타스는 이미 공허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것들을 쫓게 되는 우리들의 불쌍한 모습을 대변해 주는 인물입니다.

에코는 우리에게 허상에서 진정으로 초연해지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Posted by 가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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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3 11:33
    막 읽고 싶은 충동이 드는군요. ^^ 요즘 점차 에코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 2008/08/13 18:10
      댓글 주소 수정/삭제
      불꽃앤써님도 에코의 세계로 빠져보세요~

      요새 '푸코의 진자'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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