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코의 진자

2008/08/27 23:27

장장 세 권에 달하는... 1100페이지가 넘는 긴 여정을 끝냈습니다.

상당히 지루했던 '바우돌리노'에 비해 '푸코의 진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재미있게 봤습니다만 기대했던 결말에서 허탈함이 조수처럼 밀려오더군요 --;

주인공들이 만들어 내는 음모론(책에서는 '계획'이라 지칭)을 포함해서 '푸코의 진자'에 등장하는 온갖 음모론과 이 허탈한 결말은 완전한 대비를 이룹니다.

이 대비는 그럴듯해 보이는 음모론들이 얼마나 쓸모없고, 허망한 것인지를 보여주면서 동시에 책을 읽으면서 등장인물들과 함께 음모론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는 독자들을 멋지게 비웃고 있습니다.

독자를 상당히 민망하게 만드는 책이라고 할까요 ;;

독자에게 장난을 걸고 비웃는 게 에코의 매력이기도 하니...;;

아무튼 이번에도 에코는 우리에게 광적인 집착을 경계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장미의 이름'도 그랬고 '바우돌리노'도 그랬으니 제가 읽은 에코의 소설은 모두 같은 곳으로 귀결되고 있네요.

듣기로는 에코는 5만권의 책을 가지고 있다고 들었는데 책과 독서에 광적으로 집착하지 않으면 과연 저 장서수가 설명이 될 수 있을런지... 먼저 모범을 보이란 말이에요 쿨럭

아직 읽지 못한 에코의 소설이 두 권(로아나 여왕의 신비한 불꽃, 전날의 섬) 더 있지만 에코의 작품을 세 권이나 연달아 보면서 서양철학 속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니 왠지 동양의 것이 무지 땡기네요.

그래서 이번엔 박상륭님의 '죽음의 한 연구'를 읽어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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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우돌리노

2008/08/11 02:12
서양에서 성배는 불멸한 최고의 권위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최후의 만찬 이후 줄 곧 성배는 서양사람들의 보물로써 남아 있죠.

최후의 만찬으로 부터 2000년이 넘게 흐른 지금도 여전히 각종 영화와 소설 등에 자주 등장하며 과학의 시대인 지금도 성배는 사람들의 관심거리입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바우돌리노'도 성배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긴 여행과 환타지를 그린 소설입니다.

바우돌리노는 에코가 자신의 지식을 마음껏 풀어놓기로 마음 먹기라도 한 듯 광대한 스케일을 자랑합니다.

대학이 막 생겨나던 프랑스의 파리에서 부터 신성로마제국의 영토였던 독일과 이탈리아, 십자군원정길에 있는 불가리아와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 그리고 끝도 없이 펼쳐진 상상 속의 나라들...주인공인 바우돌리노는 이 모든 곳을 무대로 삼아 모험을 합니다.

이 책에는 정치적인 갈등이 많이 등장합니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와 교황의 갈등, 황제와 이탈리아 도시국가들의 갈등, 동로마제국 내의 암투...

이런 갈등에서는 정치적인 명분과 정당성이 중요한데 황제의 양아들인 바우돌리노는 황제의 명분을 위해서 성배를 찾고 전설 속에 등장하는 요한사제를 찾아 긴 여행을 떠납니다.

평생에 걸친 여행에서도 결국 요한사제는 만나지 못하고 돌아온 바우돌리노가 전쟁의 참화 속에서 구해준 동로마제국의 역사가인 니케타스에게 자신의 일생을 얘기하는데요...

이 소설은 바우돌리노가 니케타스에게 얘기하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하지만 바우돌리노의 이야기에는 역사적인 사실에 근거한 믿을 만한 부분도 있는 반면에 허황된 환타지로 밖에 믿을 수 없는 부분이 굉장히 많습니다.

나중엔 바우돌리노가 황제의 양아들이었는지도 의심이 되고 그의 모든 이야기가 거짓말이 아닌지 의심을 갖게 됩니다.

아니 의심 보다는 거짓말일 거라는 강한 확신을 갖게 됩니다.

바우돌리노는 타고난 거짓말쟁이에 타고난 이야기꾼이라구요...

그래서 책을 덮는 순간엔 참 묘한 기분이 듭니다. 이 책을 읽었던 시간 만큼 에코에게 낚인 것 같은 기분이지요.

하지만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거대한 스케일로 성배의 권위를 대변함과 동시에 이 모든 이야기가 한갖 이야기꾼의 농간이었다는 식의 결말은 우리가 평생동안 막연한 환상을 갖고 살아가는 권력과 명예, 진리 등이 얼마나 공허한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려는 의도 같습니다.

우리는 이미 삶을 통해서 권력과 명예, 진리 등이 얼마나 공허한지 이미 알고 있다구요?

그럼 이미 바우돌리노의 이야기가 거짓임을 눈치채고도 계속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서 미칠지경이어서 계속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던 니케타스는 무엇일까요?

니케타스는 이미 공허함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것들을 쫓게 되는 우리들의 불쌍한 모습을 대변해 주는 인물입니다.

에코는 우리에게 허상에서 진정으로 초연해지는 한 단계 더 성숙한 모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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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13 11:33
    막 읽고 싶은 충동이 드는군요. ^^ 요즘 점차 에코에 대한 호기심이 급상승하고 있습니다.
    • 2008/08/13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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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꽃앤써님도 에코의 세계로 빠져보세요~

      요새 '푸코의 진자' 읽고 있는데 정말 재밌습니다.^^

장미의 이름

2008/08/04 19:37

'장미의 이름'은 아는 것 정말 많고 글을 재밌고 어렵게 쓰기로 유명한 움베르토 에코의 첫 소설입니다.

사실 읽은 지는 서너 달 된 것 같은데 계속 잊혀져 가는 것 같아서 더 까먹기 전에 흔적이라도 남기려 포스팅을 하게 됐네요.

이 책은 추리소설입니다.

중세의 어느 수도원에서 벌어지는 연쇄살인사건이 벌어지는데 수도원장의 부탁으로 이를 수사하는 윌리엄신부가 겪는 7일간의 이야기입니다.

윌리엄신부의 수행원(?)인 아드소가 화자로 이야기 자체는 아드소가 늙어서 사건 당시를 회상하는 구성입니다.

범인이 누구고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말해 버리면 스포가 될테니 넘어가고 제가 중간에 인상깊게 봤던 등장인물들의 논쟁에 대해서 말하겠습니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이 어려운 이유 중의 하나가 얼핏 이야기 흐름과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지루한(?) 논쟁이 자주 등장해서 입니다.

하지만 책을 끝까지 읽으면 이 논쟁이 이야기 흐름에 어떻게 연관이 되고 왜 필요한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참고로 지금 틈틈이 읽고 있는 에코의 다른 작품인 '바우돌리노'도 마찬가지로 이런 논쟁이 자주 등장하는데 이런 논쟁에서 에코의 박학다식함을 느끼곤 합니다.

제가 '장미의 이름'에서 흥미롭게 본 논쟁은 이단에 대한 논쟁이었습니다.

권력화된 종교의 부정부패와 그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이단이라는 희생양이 만들어지는 과정이 나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가톨릭의 교리라는 게 니케아공의회에서 자신들의 정치적 입맛에 맞는 것만을 골라낸 것 처럼 모든 종교의 교리가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기에 애초에 이단이라는 단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이단'이라는 단어가 갖는 힘이 막강한지라 아직도 이단이라는 이름으로 타 교파를 공격하는 사람들이 대한민국 땅에 존재합니다.

또한 대한민국에는 '이단'이라는 단어의 다른 형태인 '빨갱이'라는 단어도 참 자주 등장하지요.

'장미의 이름' 전체에 걸쳐서 등장하는 또 하나의 단어는 '요한 묵시룩'입니다.

'요한 묵시룩'은 성서의 맨 마지막에 있는 부분으로 이 세상의 마지막 날에 대한 섬찟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은 세 살짜리 아이도 종말에 대해서 코웃음 칠 정도로 사람들이 과학에 익숙한 시대이지만 그 시대 사람들은 '요한 묵시룩'을 보면서 벌벌 떨면서 우왕좌왕 할 수 밖에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우리는 종말이라는 비과학적 요소만을 비웃을 수 있을 뿐 여전히 우리에게 과학적인 통계나 사회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다가오는 조작된 허상에는 중세사람들 만큼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중세 사람들이 '요한 묵시룩'에 동요되던 것 이상으로 우리도 쉽게 동요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죠.

'장미의 이름'은 불합리한 사회(중세유럽은 종교가 곧 사회인 시대였기에)의 단면인 '이단'과 세상의 종말을 예견하는 '요한 묵시룩'을 함께 전개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사건을 해결하는 윌리엄신부는 모국인 영국의 경험주의적 사고와 아랍의 자연주의적 사고(과학적 사고)를 지닌 인물입니다.

불합리한 사회와 민중을 동요시키는 조작된 정보와 이를 해결하는 객관적인 사고...

분명 지금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생각합니다.

Posted by 가람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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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8/04 20:40
    -저는 '푸코의 진자' 읽다가 저의 머리를 저주했습니다

    -_-

    -아직도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어요;;;
    • 2008/08/04 2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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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코의 진자, 전날의 섬이 하도 어렵다고 소문나서 저도 기대(?)하고 있습니다.

      근데 지금 보고 있는 책이 3가지라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2. 2008/08/05 20:43
    가람지기님. 답방왔습니다.^^

    굉장히 생산적인 블로그네요. 좋은 글도 많구요. 언제 한번 정독, 정주행 한번 해야겠습니다.^^

    움베르토 에코. 호기심을 자극하는 작가임에도 너무 어렵다는 평이 많아서 많은 분들을 망설이게 한다는 바로 그분이시군요.^^

    역시 그 어려움의 정점에 있는 소설이 푸코의 진자라고 하던데, 저도 조만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 2008/08/06 1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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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찬이시구요 답방 감사합니다 ^^

      움베르토 에코 책은 보통 '장미의 이름'을 먼저 보실 것을 추천하더라구요.

      저도 매우 재밌게 봤는데 정말 강추입니다.ㅎㅎㅎ
  3. 2008/08/06 22:52
    저는 영화로 봤습니다. ^^; 아..영화도 띄엄띄엄봐서리..이참에 책을 사서 읽어봐야겠네요.
    • 2008/08/06 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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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숀 코너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말씀이시군요...

      보고 싶은 영화 중의 하나인데 볼 만 한가요?
  4. 2008/08/07 21:35
    에코 책 중에,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라는 에세이 집이 있는데 가볍게 읽어 볼만 합니다. 워낙 위트도 넘치시는 분이라 ㅎㅎ

    영화는 소설 먼저보고 나서 보시면 좀 실망... 일단 영화는 너무 추리 쪽에만 치중해다 보니 ^^;

    저도 푸코의 진자는 읽다가 포기... ㅠ.ㅜ
    • 2008/08/07 22:52
      댓글 주소 수정/삭제
      '세상의...'은 저도 언젠가 한 번 보려고 생각 중인 책입니다.

      푸코의 진자는 장난 아닌가 보네요... ㅎㄷㄷㄷㄷㄷ
  5. 2008/08/09 10:06
    언제 한 번 읽어봐야겠네요 ㅎㅎ
    • 2008/08/09 14:41
      댓글 주소 수정/삭제
      언제 한 번 꼭 읽어 보세요 강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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